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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에 인사동을 이렇게 자주 방문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같은 곳을 두 번 지나쳤는데 한 번은 바쁘다는 이유와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방문하지 않았었다. 두 번째 그곳을 다시 마주했을 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과 큐알코드를 찍는 직원들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입구 쪽에 전시된 영상 앞에 바글바글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홀리듯이 전시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2021년 7월 중순부터 말까지 진행이라고 했던 성남훈 작가의 전시전이라고 했다. 시기가 맞아서인지 8월의 아프가니스탄 상황때문인지 8월 말이 되어가는 시기까지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 마무리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방문하고 싶다. 3층까지 올라가서 다 본 줄 알았는데, 옥상 루프탑에도 전시된 사진이 있었다는 건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4층을 둘러봤을 때 위로 올라가는 곳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근데 다시 갈 일이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사진전의 테마는 '부유하는 슬픔의 시'다. 프랑스 파리 사진 대학 이카르 포토에서 다큐멘터리, 사진 전공을 했다는 그의 이력이 큰 신뢰감을 줬다.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알기 전까지 나는 다큐멘터리는 오로지 사실을 보여주는 공신력 있는 미디어의 한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도 제작자와 편집자의 마음에 맞게 요리 조무르고 저리 조물러, 내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다큐멘터리 베이스의 작품을 굳이 곧대로 믿지 않는 버릇 아닌 버릇이 생겨났다. 순수하든 불순하든 내 눈앞에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이나 사진 등의 미디어는 결국 제작자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으로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정교하게 짜여진 사각형 프레임에 작가가 원하는 구도, 물체, 시간에 따른 빛 등이 잘 맞아 들어갔을 때. 무엇을 의도했든 잘 짜인 작가의 판 속 감정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동요가 일치했을 때,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무덤덤한 심장의 박동수의 물결이 조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감동의 동화에 초점을 맞춰 성남훈 작가의 '부유하는 슬픔의 시' 전시를 봤을 때, 나는 그런 감정 교화에 실패했다. 30년간 여행지로 권장되는 국가들이 아닌. 언제 내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 장소에 있는 동안 내전이 일고 있어도 별날 것 없는. 그런 장소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한 작가의 노고에는 아주 아주 큰 존경심과 경외심을 드러내는 바이지만,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다.

 

 

성남훈 작가 전시 작품 루마니아 집사

 

 

전시장으로 연결되는 3층 입구에 바로 도달하게 되면 만날 수 있는 그의 대표작으로 추정되는 '루마니아 집시'.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밭의 중심에 서 있는 꼬마 집시. 순수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서 나는 어쩌면 나만의 편견으로 순수하지 못한 집시의 특성을 일반화해 이 작품을 왜곡하고 봤던 것 같다. 유럽에서의 집시라면 사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돈을 뻔뻔하게 구걸하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관광객에게는 불친절하고 성가신 이미지로, 경험으로 나에게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실과 작품에서 나타나는 물체의 괴리감으로 인해 내가 작품을 작품 자체로 온전히 관람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소녀들의 집시라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오만하게 뻔뻔한 모습으로 자신의 상황을 수려하게 유리한 쪽으로 단번에 끌고 오는 것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니까. 내 편견이 이렇기에 작품을 바라본 내 마음에서 울렁이는 무언가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외에도 꽤 많은 양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코테(Kote)는 처음 방문한 곳이었지만, 내부 건물의 구조가 흡사 외국의 갤러리에서 본 떠온듯하게 비슷하게 일치하면서도 전시장이 넓었다. 천장에서 태양광이 들어오는 구조로 낮시간에 관람하는 작품들에게 자연조명을 선사해주는 훌륭한 곳이었다. 코로나로 오랜만의 나들이었지만 좋은 전시들을 우연히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서 뿌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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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이태리, 런던의 도시들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무전여행한다는 시놉시스는 솔깃한 모험심을 자극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나라는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기도 했다.

덤으로 유럽 여행의 풍경까지 볼 수 있을테니 코로나로 여행을 잠시 멈추고 있는 나에게 옛날 생각도 불러일으킬 겸 추억 여행을 함께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보게 됐다.

영화는 스무살에서 스물네 살까지 모여있는 영화과 학생들의 잉여로움을 설명하는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다음 학기 등록금도 못 벌게 된 이상 뭔가 마무리 짓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영화과 학생이었던 네 명은 각자 맡은 역할이 분명했고, 기술을 이용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물물 교환으로 유럽 여행을 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기획, 애니, 특수효과, 컴퓨터 담당을 각자 맡은 사람들의 설명과 함께 그들의 원대한 계획이 간단하고 귀여운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유럽에 있는 한인민박의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그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아 유럽을 횡단하고 오는 것이 그들의 첫 번 째 프로젝트였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최종 목적지 영국에서 세기의 아이돌, 비틀즈같은 가수를 발굴하고 섭외해 뮤직비디오 영상을 만들어 빵 터뜨리는 것이다.

 

두 개의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수행하면서 스스로 자처한 잉여의 삶을 청산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한 2013년에 봤어도 그랬을 것 같고, 지금 봐도 참 원대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는 것에 새삼 그들의 도전이 멋있어 보이고, 비교적 시간에서 자유로운 그들의 나이가 부러웠다.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면서 20대 중 후반의 디자이너와 기획을 도와줄 선배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이태리로 넘어가기 전,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별을 고한다. 사실 중도 포기하는 이들의 행보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기보다는 그들의 입장에 더 이해가 가기에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있었어도 그들과 같은 결과를 도출해내지 않았을까 싶어서 공감이 많이 됐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여행하면서 내가 겪었던 에피소드와 비슷한 상황도 있어서 그 날의 나를 떠올릴 수 있어 좋았고, 잘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 나는 촬영 화질도 좋았다. 다만 중간에 편집된 내용이 많아 보이고, 영화 제목에 나오는 ‘히치하이킹’ 과정을 조금 더 생생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예를 들면, 히치하이킹에 성공해서 차에 탑승하는 과정 같은 것들. 아무래도 영화 속 내용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조금 더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그들의 여행 이야기 속, 프랑스 파리에서 두 시간 남짓 되는 근교를 가는 여정 초반에 만난 버스 드라이버가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남부 여행 시 기차를 놓치거나, 비행기 타러 가는 길 기차 안에서, 기차를 또 잘 못 타서 허둥지둥 될 때 만났던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통하지 않는데 몸짓, 발짓해가며 다른 정류장까지 나와 함께 뛰어주던 아주머니도 많이 생각났다. 항시 보호해야 할 어린 딸과 아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플랫폼에 애들을 내버려두고 내 기차 놓칠까 봐 함께 걱정하며 도와주던 그 온정이 다큐 속에 놓인 주인공의 심정에서 큰 도움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 종착지까지 완전히 다 데려다주는 것이 아닐지라도.

프랑스에서 로마로 넘어가기 전, 가지고 있던 예산이 떨어지고 연락 오는 것도 없고 프로젝트를 실행할 실마리가 1도 보이지 않을 때 쯤, 그들은 계획을 포기하려고 한다. 그때 그들에게 이태리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한다. 홍보 영상을 직접적으로 의뢰한 건 아니었지만, 한 번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프랑스에서 이태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로마의 휴일> 진실의 입이 있는 곳, 이태리

 

로마에 도착해 맥도날드 앞에서 만나기로 한 한인민박 주인을 기다리면서 '현학'이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이렇게 설레는 기다림은 오랜만인 거 같아."


전화기를 부여잡고 만나자는 이야기를 들으며 입에서 감출 수 없는 웃음과 미소가 '호재'를 통해 흘러나온다. 네 명의 청춘들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또 다른 임팩트 있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째지게 기분 좋은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감정들이 스크린 밖에 앉아 있는 나에게도 전달되어 괜히 설레고 좋았다. 도전을 위해 도전을 하는 진정한 청춘 영화 같아서. 

 

동시에 나에게 자문을 하게 됐다.

"나는 언제 뭘 하면서, 저렇게 설레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지?"

 

2년이란 시간을 영국에서 보내면서, 나도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그 계획을 조금씩 이행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내 프로젝트는 완성되지 못 한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보면서 그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줄이면서 이 프로젝트를 더 열심히 하고 영상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보았다. 

 

중간에 지루하다고 느낀건지, 후반부엔 네 명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틈을 위기로 집어넣었다. 그들의 위기는 팀플에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던 '호재'의 야망찬 계획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가수 '아르코'의 마지막 앨범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도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동료들과 상의하지도 않고, 뮤직 비디오를 만들 수 있다고 이메일 연락을 해버린 것이다. 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호재'는 동시에 아르코의 뮤직 비디오와 원래 일정에 잡혀있던 아일랜드 가수 '브라이언'의 뮤직 비디오 작업을 동시에 해야 했던 것이다. 더불어, 생존을 위한 본업일도 해야 했던 것이었다. 하루에 펍에서 10~12시간가량의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참... 살인적인 스케줄이라고 생각했다. '호재'를 제외한 나머지 동생들은 이제 기껏해야 스무 살이 되었다. 그들의 계획에서 약간은 벗어나 보이는 호재의 이기적인 계획이 그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왔을 거라는 것도 잘 느껴졌다. 하지만, 호재의 입장도 너무나 이해가 갔다. 요즘 말로 말하면 이것은 성덕인 것이다. 호재는 아르코의 성덕이 되고 싶었고, 그걸 위해 자신의 욕심을 조금 내비쳤을 뿐이다. 사람은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분야나 부분에 있어 이기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호재와 동생들의 갈등이 솔직하게 느껴져서 좋았던 부분이었다. 

 

 

유럽 여행지의 명소들을 예쁘고 화려하게 담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가 끝난 후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오히려 목적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아서 좋았다. 대리 만족을 느끼려면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걸로. 호재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던 순수한 열정과 정열은 사라졌는지, 이후 이렇다 할 행보가 눈에 띄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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