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인사동에 나올 일이 있어서 북촌칼국수 집에 들렀다. 마침 날도 비가 오고.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날엔 으레 국물 있는 음식을 먹어줘야 하는 법이니까. 길치인 나는 길도 찾아보지 않고 발길이 인도하는 대로 익숙한 골목에 있던 북촌칼국수 집을 찾아냈다. 아마 여기가 제일 처음 생긴 곳이었을 것이다. 내 앞 테이블엔 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머리가 긴 여자가 예전에도 여기에 자주 드나들었었는지, 주인아저씨에게 여기 말고 다른 곳도 있었죠?라고 물어봤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그전부터 인사동에 드나드는 국내 수요나 관광객이 줄어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이전에 있던 2개의 가게를 처분했다고 하시는 걸 엿들었다. 인사동 쌈지길에서 종로 3가로 이어지는 골목에 있던 가게들도 임대를 내놓고 빈 가게가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힘들지만 국민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떡갈비

 

예전에는 북촌 칼국수를 시키면 뽀얀 사골국물에 면발이 조금 도톰한 칼국수가 나왔던 건데, 이번에 메뉴판을 살펴보니 뜨거운 칼국수는 멸치 육수로 우러낸 것 밖에 없었다. 그런 뽀얀 국물의 베이스는 만둣국과 페어링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점심시간에 틈을 내어 먹는 거라 많은 양을 시킬 수 없었는데, 얇은 겉피에 알알이 들어차 있는 갈비 만두도 어찌나 시키고 싶던지. 아쉬운 대로 떡갈비와 함께 나오는 북촌 칼국수를 시켰다. 광주에서 먹던 떡갈비의 맛있는 추억이 있어서인지 이상하게 수제로 만드는 떡갈비로 보이는 곳에선 꼭 떡갈비를 시켜먹게 된다. 갓 나왔을 때는 시중에서 파는 냉동식품의 떡갈비와 다르게 도톰한 패티안에서 흐르는 육즙과 부드럽게 씹히는 다진 고기의 맛이 어우러져서 '역시 시키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앉은 위치 바로 위에 중앙 에어컨이 작동하는 바람에 칼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떡갈비는 냉속도로 차게 식어갔다. 습한 온도 때문에 공기 순환과 정화를 위해서 틀어놓은 에어컨일 텐데, 인공적인 이 바람이 괜히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북촌 멸치 육수 칼국수

 

 

 

밖에서 사먹는 음식값이 만원은 기본인 시대에, 떡갈비와 뜨근하게 배를 불릴 수 있는 북촌 칼국수의 콤비네이션이 8천 원 밖에 안 한다는 사실에 아직은 인사동의 옛정이 살아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덤으로 나오는 투박한 배추김치와 칼국수 한 입에, 뜨거운 국물 한 스푼. 비 오는 날에 이처럼 소박한 감성으로 만족을 시키는 음식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칼국수의 밑바닥이 보여갈 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만원 이하의 음식은 웬만하면 현금으로 지불해달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현금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는 요즘, 그 문구를 보고 덜컥 겁이 나, 계산하면서 '죄송하지만 제가 현금을..'이라고 했더니 주인아저씨께서는 온화하고 상냥한 미소로 괜찮다고 응해주셨다. 기분 좋게 먹은 음식에 서로 의가 상할 뻔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728x90
반응형
LIST

+ Recent posts